# 첫인상

제목답게 반짝임이 가득한 표지이다. 제목 아래에는 소녀(로 추정되는) 사람이 손을 높이 들고 하늘 위에 반짝이는 빛을 향해 손을 뻗고 있는데 주변의 푸릇한 풍경과 흩날리는 눈발, 눈결정 모양으로 그려진 디테일이 살아있는 그림이 글을 읽고 나면 한층 더 이해가 된다. 겉으로만 봐서 알 수 있는 것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살짝 번져있는 듯한 느낌의 그림도 사진의 플레어 현상으로 인한 이미지를 보듯 주인공 유리가 보는 시각처럼 공감되기도 하고 꿈처럼 스며드는 몽롱함과 포근함을 담고 있어 마음에 든다. 주인공의 복잡한 아픔을 담고 있는 스파클이자 새롭게 거듭남을 담고 있는 눈송이(작품중 이 반짝임을 표현하는 말)처럼 아픔과 찬란함이 함께 표현된 것 같다. 오래 보고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고 노래한 시인이 괜히 나왔겠나. 그림 속 비행기 곁의 빛으로부터 나온 눈부심을 향한 손까지만 보는 것도 괜찮은 듯 하다. 글을 모두 읽은 후 이 그림을 찬찬히 다시 둘러본다면 그 디테일과 세심한 표현들에 놀랄 것이라고 확신한다. 제목의 클 오른쪽 아래에 반짝이도 사진 찍고 나서야 알았네. ^^

수학을 어지간히 싫어하는 사람이 목차를 보면… 이 소설… 읽어도 괜찮은걸까 고민하게 만들 듯 하다. 심지어 수학 뿐만이 아니라 외계어보다 더 외계어같다는 ‘물리’가 떠오르게 하는 ‘가속도’라는 제목까지 아주 가관이다. 그런데 걱정말고 읽어도 괜찮다고 자신있게 권한다. 오히려 이과충이 읽으면 책을 덮거나 고쳐주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느라 괘나 힘들 것이라고 확신한다. 아마도… ‘1부 미지수’의 첫 소제목 ‘눈송이’부터. ^^ 예를 들면…
p.14
”…… 엄마한테는 엑스 시어머니일 뿐이잖아. 나한테는 용의자 엑스라고.“
(갑자기? ‘눈송이’ 다음 소제목이 미지수 x다)
안대로 가린 왼쪽 눈…… 절반가량의 세상이 오른쪽 눈을 통해 들어왔다.
(양안의 시야각은 200도, 한쪽 눈의 시야각은 160도 정도라고 한다. 그 전에 렌즈의 절반을 가려도 맺히는 상은 그대로다를 먼저 떠올린 이과충이 있을수도 있다.)
중요한 포인트는… 이건 시작일 뿐이라는 것. 그리고 매우 사소한 거슬림일 뿐이라는 것. ^^ 조금 뒤에는 root와 route를 그냥 동일시해버리는 언어유희도 펼쳐진다.
# 삶은 앞으로 나아가는거야.
5년전. 집에서 일어난 사고로 한쪽 눈이 망가진 주인공 유리에게 온 각막 이식의 기회. 크리스마스의 기적 중 한 명이 되며 이제는 잘 생활하던 유리의 왼쪽 눈에 ‘눈송이’가 보이기 시작한다.
(p.163)
“대체 뭐야 넌.”
“넌 뭐냐고.”
끝까지 따라다닐 유리의 ‘눈송이’다. 프롤로그부터 의미심장하게 등장한 유리의 ‘눈송이’은 어떻게 성장하고 어떻게 유리에게 영향을 주게 될까. 그리고 이 눈송이가 어떻게 제목의 ‘스파클’과 관련 되어갈까 궁금해진다. 일찌감치 알아챌 수 있는 독자들도 있을 수 있겠지만 다 읽고 나야 짐작되는 독자들도 있으시리라 생각된다. 포도막에 생긴 염증으로 보인다는 이 ‘눈송이’(유리피셜 용어)는 책 전체에 걸쳐 유리의 감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중요한 상징이니 어떻게 표현되는지 살펴보는 것도 중요한 포인트 중 하나가 되겠다.
의대를 지망하지만 크게 관심도 없고, 재능도 없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유리가 ‘눈송이’를 마주하게 되면서 장기 기증자 x를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일어나는 유리의 성장기를 읽으면서 왠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떠올랐다. 어쩌면 <나의 라임오렌지나무>가 끝나는 시점에서 <스파클>은 시작한다는 점이 다르기도 하지만. 자기에게 한없이 주었던 뽀르뚜가의 죽음으로 ‘아이’에서 ‘소년’이 되는 제제의 이야기와 달리 유리의 이야기는 자신에게 새 삶을 부여했던 기증자의 죽음으로부터도 5년 후에 시작된다. 그리고 유리는 점차 시기상으로 사건상으로 ’사춘기‘에서 ’어른‘의 초입으로 가는 이야기를 펼쳐보여준다. 사람마다 성장이 이루어지는 계기도 시점도 경험도 다르니 어디가 시작이고 끝이라고 할 수야 없는 것이야 당연하다. 그래, 전혀 중요한 일이 아니다. 중요한 건 행복과 아픔이 합쳐져 가는 과정에서 ’성장‘이 일어난다는 점이겠지. 그런 면에서 두 작품은 또 꽤 동질감이 든다.
식물인간이 된 동생을 찾아가지 않는 유리, 아빠에게 엄마를 이름으로 부르는 유리, 사고가 있던 당시 자기를 버리고 동생을 챙겼다고 인지하고 있어서 할머니가 너무 싫은 유리. 사춘기의 끝판왕같은 유리가 기증자인 미지수 x를 찾아 떠나는 여정은 살아내기 위해 유리에게 필요한 외줄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미지수 x를 찾아 떠나는 여정을 통해 유리는 새로운 친구와 새로운 진짜 꿈을 찾는다. 기증자 x를 찾아나선 유리에게, 온라인으로 ’기증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발견한 시온은 미지수를 찾기 위한 유리의 본격적인 여정으로 들어선다. 어쩌다 서로를 인지하고 어쩌다 만나고 기증자의 흔적을 더듬어가면서 미지수도 구하고 경험적 확률도 나오고, 기상현상 상식들도 쏟아지는 이 책은 실제로는 무릎탁!은 안나오는 연결이지만 재미난 언어유희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작품이다. 본인이 이과충이라면 잠시 논리성은 내려두고 유리의 언어유희와 경계를 넘나들어보려는 작가의 시도에 신선함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란다.
중요한 것은 살아가면서 전혀 관련없어 보이는 것이 연결되는 순간들이 있고, 우리 삶에는 끊임없이 미지수 x같은 존재나 사건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들을 구해내고, 거리를 좁히고, 기울기도 하면서 살아간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미지수를 만나면 우리는 그럼 어떻게 되는거냐고? 앞으로 나아가는거지. 삶은 위로 올라가려고 살아가는게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거지. 그러다보면 같은 지점인 것 같은 곳을 지나기도 하는데 그건 다른 ‘시공간’이야. 유명한 과학자도 그랬대. 공간의 좌푯값이 같아도 시간이 다르면 그건 같은 점이 아니라고. 왜냐하면 시공간은 하나로 합쳐진 4차원이거든. 뭔 소리냐고? 모르면 넘어가. 느낌적인 느낌으로.
# 작가가 진정 쓰고 싶었던 것
은 아마도 시나 드라마 대본이 아니었을까 감히 짐작해본다. 영상으로 보여지는 걸 염두에 둔 것같은 표현들도 꽤 보인다. 뜻도 다르고 정확하지도 않은 언어를 발음이 같다고 하여, 혹은 설명 중에 포함된 일부 단어가 포함되었다고 해서 억지로 연결시켜 한 권의 소설을 끌고 간다. 장편소설로의 분량은 짧은 편이지만 함축적이거나 이해는 할 수 없고 느낌적인 느낌으로 수학을 바라본 <스파클>은 소설로 보기엔 다소 긴 느낌이다. 구체적인 표현이나 논리적인 이야기 전개같은 것보다 느낌적인 ‘감정선’을 따라갈 수 있는 감성파이거나 글에서 영상이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사람이라면 감동을 받을만한 요소가 충분히 담겨 있다. 수학과 연계한 설명했다는 낲선 소재가 주는 신선함도 함께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주의사항은 그 연계성을 ‘논리’나 ‘이해’를 위해서 보지는 않아야 한다는 점을 경고한다. 만약 위화감없이 읽힌다면… 옛날식 분류로 ‘문과’를 추천한다. 적어도 현재 상태로는 지식적인 면에서 그렇다는 말일 뿐이니 오해는 반사하겠다. ‘생뚱함’이나 ’오류‘ 혹은 ’위계‘같은 것이 떠오른다면 빠르게 감정선을 중심으로 읽어가거나 떠오르는 것을 즐기는 마음을 먹기를 바란다. 안 느껴지면? 재미지게 읽으며 감동 받으면 된다! 명쾌하구만 ^^ 수학과 연애가 거의 따로 놀면서 왠지 자연스러운 작품을 보고 싶다면 <수학걸>이라는 작품을 추천해본다.(그러나… 품절되었다. 출판사에 전화하면 재고가 조금 있을지도.)
함축적이고 디테일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시는 충분히 감동을 받고 느낄 수 있다. 거기에 이야기가 겻들여진다면 금상첨화겠다. 다만 그것이 장편소설 수준으로 길어진다면 고민해볼 부분. 글을 읽다보면 ’이미지’, 그것도 ’소리‘까지 가미된 ‘영상’을떠올리며 글을 쓴 것이 아닐까 싶다. ‘영상미’가 뛰어난 영화로 제작된다면, 그리고 연기력이 좋은 배우들로 제작된 영화를 보면 이과충인 나의 감동은 더 클 것 같다. 음… 이과충을 설득할만한 보완이 조금만 첨가된다면 하는 한소끔 바람을 얹어서.
# 만약 내가 이과충이다 싶거나 뭔가 찜찜함이 들 때 작품 감상팁.
1. 슈슈슉 느낌적인 느낌으로 빠르게 두 번 정도 읽는다.
2. 찜찜함이나 오류같은 것을 찾고 설명하는 재미를 찾는다.
덧.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협찬받아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래도 솔직한 리뷰입니다. 보면 아시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