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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9.11.(목) 필사의 이틀. 기.자.카.디(기대감과 자신감을 가지고 카르페 디엠)

  # 인생이 그런거지 뭐

<대온실 수리 보고서> p12

본인은 기능적으로 불리는 소목수가 마찬가지로 기능적인 목적을 위해 발간된 관공서 유인물 속 수리의 생활에 감동을 느끼는 인간미와 대비가 자못 의미심장하다. 거기에 살아가면서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수리’와 분노유발 수리를 한 문장 안에 놀랍게 담아내는 ‘소목’의 현기와 작가의 표현력이 화룡점정으로 이 글이 보여줄 감동의 결과가 눈에 그려지는 듯한 착각이 든다. 이 글의 주인공으로 예상되는 은혜 친구에게는 전혀 아닌 순간이었겠지만. 그러나 인생이 뭐 에상대로 굴러가는게 얼마나 되던가. 온 힘을 다해 쏟아낸 사랑의 대상에게는 외면받고 관심없는 대상에게는 구애를 받는 엇갈림이 오히려 일상이라고 할 수도 있는게 인생 아닌가. 인생의 어떤 순간에서 감동이 올지, 비애가 올지 따위를 알 수 있다면 인생이 조금 더 두근두근해지거나 평온해질까. 알고 있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면 인생의 의미는 어떻게 부여될 수 있을까.

# 운명의 사이렌?
10년 동안 한 여자를 바라보기만 한 형 광식과 1년 동안 열 여자랑 만나는 동생 광태의 이야기를 다룬 <광식이 동생 광태>에서 광식과 윤경은 10년을 서로 인연으로 생각하며 지내왔습니다.
‘그래, 윤경이가 나를 좋아하는 게 거의 확실해. 고백하면 분명 받아줄거야‘
윤경도 본인을 좋아한다고 확신에 가까운 짐작을 하면서도 광식은 고백하지 못합니다. 결국 이런저런 오해로 윤경은 동생 광태 친구와 만나게 되지요. ㅜㅠ
’지금이라도 얘기하면 분명 성공할 것 같아‘
찌질이 광식은 그런 순간에도 기껏 하늘이 맺어준 인연끼리 만나는 마지막 순간에 하늘이 축구 경기의 신호처럼 알려주면 좋겠다는 넋두리만 하고 있습니다. 이걸 순수하다고 해야할지 찌질하다고 해야할지. ^^;; 결국 결혼식 장에 당당하게 걸어들어가 손을 내미는 것까지는 해낸 광식입니다. 그러나… 역시 축가를 열창하고는 당당히 돌아나옵니다. 하늘이 알려줬다면 광식은 윤경의 손을 잡았을까요. 울리지 않았으니 결국 둘은 인연이 아니었던걸까요.
6개월 뒤.
윤경과 지난해 왔던 식당에서 저녁을 먹고 나가는 입구 앞에 앉아있던 여자가 왠지 자꾸 눈에 밟힙니다.
“혹시… 우리 어디서 만난 적 있지 않나요?”
“글쎄요. 그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네요…”
‘이상하네 어디서 본 것 같은데… 호감이 있는 것 같은데 좀 더 이야기해볼까’
이번에도 역시 결국 돌아서 나가는 광식의 머리 위 경보가 울리는군요.
“따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르릉~”
쏴아아-
작은 불난리를 낸 종업원 덕분에 경보에 물까지 쏟아지다니.
우산을 쓰고 나가려던 여자가 슬며시 다가와 우산을 씌워주며 마주섭니다.
‘운명이네.’

광식은 그 여자에게 고백을 했을까요. 찌질이 넋두리를 했던 묘지에서 광식의 방해로 먹던 소주를 빌려줬던 그 여자라는 것을 기억해냈을까요.
그게 뭐 상관이 있을까요. 광식에게는 행동에 필연의 이유가 필요했을지 모르겠지만 뭐 우리는 다르니까요? ^^
지금 이 순간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몰라도, 우연히 나를 스쳐가는 인연이더라도, 필연에 가까운 개연으로 내게 도달한 인연이더라도 우리는 인생을 만들어나갈 수 있겠지요?

# 은혜 친구의 미래는?
가끔 헷갈리는 순간이 올 때 나를 소설 속 주인공으로 생각해본다면 판단에 도움이 될까요? 마음이 좀 편하게 결정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보는 소설의 전개가 에상과 다를 때 우리는 오히려 놀라워하고 즐거워하니 긴장의 두근거림만이 아니라 기대의 두근거림도 함께 느낄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은헤 친구의 이름은 무엇이고, 은혜 친구의 미래는 어떻게 펼쳐질까요? 너무나 궁금하네요. 빨리 읽어봐야겠습니다.
그리고 내일 하루 중 고민되는 어떤 순간. 소설 속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판단해볼까 싶네요. 그리고 내 인생의 책을 계속해서 썼다 지우고 수정하고 썼다 지우고 수정하는 과정을 반복해봐야겠습니다. <대온실 수리 보고서>만큼 기대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