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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일기/『유연함의 힘』

[책일기] <먼 거울>(1978, 바바라 터크먼) 서문 - 650년 시차 너머로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

도덕적 세계의 궤적은 길지만 결국 정의를 향해 구부러집니다
- 마틴 루터 킹

  “오디세우스의 장대한 항해를 앞둔 선원이 이런 심정이 아닐까요. 두려우면서도 막막하지만 행복하게 오싹하네요.”

먼 거울의 의미

  # <먼 거울>의 탄생
  재난이 사회에 끼친 영향을 찾아내려는 욕망. 그것이 바바라 터크먼이 찾은 <먼 거울>의 출발이었다고 합니다. 인구의 약 3분의 1이 사망한 재난. 죽음이란 한 가족의 3분의 1이더라도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건만 국가를 넘어서는 규모의 재난이라니 상상하기 어렵다. 그러한 재난을 ‘먼 거울’로 삼으려는 출발의라니 1970년대의 상황은 어떠했던걸까 생각할 수 밖에 없게 됩니다. 14쪽에 불과한 ’서문‘만으로도 <먼 거울>이 품은 혼돈과 무게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그만큼 그 가치와 울림 또한 큽니다.

재난의 도래라는 절망이자 또한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

# <먼 거울>이 주는 의미
  신약성서<요한계시록>에 등장한 전쟁, 기근, 질병, 죽음을 상징하는 ’네 명의 기수‘를 14세기에는 전염병, 전쟁, 세금, 약탈, 나쁜 정부, 폭동, 교회의 분립이라는 일곱의 기수로 표현한 터크먼의 표현을 살펴보면 확실히 전쟁과 정부의 부패, 오일 쇼크, 스태그플레이션 등 당시의 혼돈을 과연 ’먼 거울‘로 삼을 만했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시대의 굵직한 사건과 정황들은 미국 역사를 잘 모르는 저에게도 확실히 힘든 시기였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절망적이라 느껴지는 14세기의 재난을 통해 터크먼은 ‘안심’이라는 상당히 극적인 의미로 되짚어냅니다. 그렇게 터크먼이 직시했던 ‘먼 거울’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으며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해줄지  그 참혹함과 어려움에 두려우면서도 열어보지 않을 수 없는 도전 의식과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이처럼 낯선 환경 속에서 우리가 친숙하다고 인식하는 행위의 성질은
인간 본성에 영구한 것으로 밝혀진다.
서문 중(37쪽)에서


  600년의 시차라는 낯선 문명에 버금가는 상황하에 일어났던 일을 살핌으로서 인간 본성을 살핀 터크먼이 말하는 인간의 모습이 아직 제게는 시작되지 않았네요.

# 서문의 의미
  참… 대작이라는 생각이 밀려오는 이유 중 하나는 저술 방식에 관한 설명이 주인 서문 만으로도 마음과 머리를 울리는 메시지들입니다. 1348~1350년 흑사병 대유행 이후 50년을 1300년부터 1450년 즈음까지의 ‘일관성 있는 역사적 시기’ 중 핵심으로 꼽지만 너무나 거대해 감당 가능한 영역으로 좁히기 위해 특정 인물의 삶을 도구로 선택합니다. 너무 좁은 범위로 다루지 않기 위해 핵심 권력층이 아닌 제 2신분, 즉 귀족 신분에 프랑스의 기사이자 혼인으로 잉글랜드 왕가의 구성원이 된 (전쟁이라는 대립 구도 속의) 이중적인 신분, 1340~1397년이라는 핵심 시기를 살다간 인물이라는 점에서 절묘한 인선임을 설득해냅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앙게랑 드 쿠시 7세(Enguerrand de Coucy VII)”
  또한 저술의 어려움에 관한 설명은 그 자체로 중세에 관한 이해를 돕습니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하면서 역사 공부를 하는 학생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요소 중 하나인 ‘시기’, 즉 날짜와 숫자 등과 관련한 불분명함을 논합니다. 부활절을 한 해의 시작으로 간주하지만 날짜의 폭넓음, 16세기에 전환된 그레고리오력과의 차이, 국왕 즉위를 기준으로 한 재위력, 교황력, 예수 공현절 다음 월요일 등 종교력 기준의 날짜 표현 등은… 저술은 커녕 읽을 생각만으로도 머리가 지끈지끈하고 아득해집니다. 더불어 행진 참여 인원이나 군중 수 등의 숫자를 자료로서가 아니라 독자에게 감탄이나 질색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문학적 장치로 사용하거나 한 사람의 이름을 오세르/온세르/오쉬르/수시르/우수르/워세르 등 너무나 다양하게 기록하는 등 시대의 기록 방식 역시 마찬가지로 어질어질합니다. 뿐만 아니라 여성과 남성의 인구 수 비교와 이유, 평민의 성서에 관한 친숙함, 귀족의 세금 면제권 등에 관한 모순적 진술의 난무 등 너무나 많은 어려움에 직면했었음을 고백합니다.
  그럼에도 터크먼은 의연합니다. 전문 역사학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어려움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전문가는 존중받아야 하지만, 터크먼과 같이 전문 학자가 아니더라도 시대와 현장을 살아낸 경험의 쌓은 감각적이고 신중한 견해들 또한 신중하게 살펴봐야할 생각들입니다. 트리클로로페녹시초산 같이 1970년대 농민들에 의해서 먼저 위험성이 경고되고 전문가인 과학자들이 틀렸던 사례처럼 전문가가 해당 분야의 모든 것을 알고 있거나 완전히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분야가 아닌 이상 설사 그 견해들이 충돌하더라도 당연한 일이겠습니다. 터크먼은 저술의 어려움에서 논한 자료들의 모순에 대해서도 이것이 오히려 삶의 일부이며 들여다보는 사람에 따라서도 중세의 색채 역시 바뀐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고 유연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점 또한 본격적인 전개가 더욱 궁금해지는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심지어 오히려 문제는 정보의 모순이 아니라 정보의 부재임을 강조하기까지 합니다.
  더불어 정보와 권력의 선택과 편향이나 인간의 기본적인 본성 등에 관한 세심함까지 잊지 않습니다.

어떤 통탄할 만한 사태(사건)가 단지 보고(기록)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눈에 띄는 정도는 무려 5배에서 10배까지 늘어난다
‘터크먼의 법칙’(p44)

  

경제적 인간과 관능적 인간은 억압할 수가 없었다.
중세 기독교의 지배 원리와 일상생활 사이의 간극은 주엣의 거대한 함정
(p45)

  그러나 또한 불가능한 기독교 이상의 고안자 또한 인간이었음을 기억하며 이는 비판의 대상이 아니라 훨씬 더 근본적인 무언가라며 심연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터크먼의 대범하고도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은 서문의 막바지에 확연하게 드러납니다.

비록 폭력적이고, 파괴적이고, 탐욕스럽고, 오류투성이일지는 몰라도
인간은 질서에 대한 나름의 상상을 유지했고, 이를 향한 탐색을 재개했다.
(p46)


# <먼 거울>은 지금도 유의미한가
  이제야 서문을 마친 제게 남은 질문은 하나입니다. <먼 거울>은 과연 지금 나와 이 시대에 유의미한가. 양극화, 거대한 기술의 등장, 모순된 자료와 주장들, 혐오와 전쟁, 종말을 예고하는 수많은 요인들… 14세기의 재난에 비할바가 아닌 듯한 현대의 위기 앞에서 중세에 관한 묘사와 인식은 1970년대 미국의 ‘먼 거울’로서만이 아니라 ’현대의 먼 거울‘이자 ’현대 재난의 미니미‘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희망‘ 또한 존재함을 느낍니다. 우리에게 감각적으로 주입되는 메시지만이 아닌, 우리의 일상과 시대를 품고 유지하는 드러나지 않은 ’삶들’이 잡아주는 균형의 힘을 믿으라고. 600년의 시차보다 더 거대한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50여년의 시차 너머로 전하는 따뜻한 에너지가 서문에서부터 넘쳐납니다.

  서문만으로도 매우 유의미한 희망을 받고 오늘은 이만 자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