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구 VS 개자식에 관한 고찰

저는 읽지 못했지만 <율의 시선>을 쓴 김민서 작가의 신작입니다.
책에는 여러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술술 읽히면서 넘어가지만 덮고 나면 슬금슬금 떠오르면서 곱씹게 되는 책, 잘 읽히지는 않지만 장면장면이 인상깊게 남는 책, 또 앞서와 반대인 책들. 저에게 <호구>는 두번째 책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1국인 호구는 60쪽(p11~p70)에 48개의 연번이 붙어 있습니다. 마치 쇼츠처럼 짧게 끊어진 장면들로 이어진 책입니다. 주인공인 윤수의 시선을 따라 짧은 장면장면이 이어지는 소설이 <호구>입니다. 제목처럼 ‘호구’임을 강조하는 내용으로 가득찬 48개의 장면을 통해 윤수=호구를 주입당합니다. ^^ 이어지는 장면들에서 호구를 벗어나기 위한 마음 속 사투를 거쳐 윤수가 한 사람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로 거듭나는 이야기가 최근 유행인 쇼츠 드라마처럼 이어져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결말입니다.
짧게짧게 소비하고 장면의 재미를 매개로 이어보는 쇼츠 드라마처럼 펼쳐지는 <호구> 속 윤수의 시간을 이어내기 위해서 여러 가지 상상이 필요합니다. 내가 경험한 단편의 장면, 그리고 영향력 있는 매체나 인물의 견해, 그 소문을 전달하고 새로이 만들어내면서 상상을 실제화 시켜가는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모습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재미있고 소비하기 쉽지만 아름답지만은 않을 수 있는 이 시대의 모습.
그렇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삶을 살아내고 있습니다. 마치 <나의 라임 오렌지나무> 속 제제의 뽀르뚜가처럼 주인공 윤수의 지지자이자 열등감인 할아버지로 인한 위로와 아픔, 그리고 할아버지를 잃어가는 고통 속에서 윤수는 변화를 시도하고 또 변화를 거듭하며 ‘나’로 거듭납니다. 계속 바뀌어가는 할아버지의 말처럼 살아가다가 자기만의 관점과 삶의 모습을 찾아낸 윤수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 짧은 쇼츠 드라마를 보고 나면 혼란스럽고 진실을 알 수 없는 시대 속에서 그래도 아직 우리가 삶을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보게 됩니다.
호랑이 입을 연상시킨다는 바둑의 ‘호구’. 거기에 들어가면 바로 잡아먹히는 ‘호구’, 그 호구가 끝없이 이어지며 몰리는 상황인 ‘축’, 바둑의 중요 화두인 살아남느냐 죽느냐의 기술인 ‘사활’, 가망이 없어 중간에 돌을 던지며 패배를 인정하는 ‘불계패’, 신묘한 한 수를 의미하는 ‘신의 한 수’로 이어지는 흐름은 의외로 기상천외하게 판을 뒤집어 남을 이겨내는 그런 한 수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 내가 ‘나’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신의 한 수’가 아닐까요
- 그 과정을 거쳐 다른 사람도 또 하나의 ‘나’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 사람 사이에서 살아갈 때 내가 ‘나’로 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요

꽤나 자극적으로 보일 수 있는 뒷면의 글이 가장 자극적인 문구이니 자극적인 학원물을 기대하고 집어드신다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 흔히 생각하는 학교 폭력의 잔인하고 증폭된 장면들 보다는 담담하고 함의적인 장면들로 차분히 메시지를 풀어내는 김민서 작가의 <호구>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너무 왜소하고 작게 느껴지는 사람, 깊게 고민하면서 어렵사리 기상천외한 탈출구를 찾아야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는 사람, 인생 답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긴긴글을 읽어내려가며 논리로 설득당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 읽어보면 은은한 위로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은 작품으로 추천합니다.
우리 인생에는 호구와 개자식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호랑이 입에 들어가 있는 윤수의 시간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해보세요. ^^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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