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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글

[책일기] <안녕, 미스터 타이거> 무음의 우아한 이야기, 우리가 함께 같은 세상을 살고 있음을 곡진하게 드러내는 계손향의 이야기.

인생이라는 열차가 달리는 철로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하였습니다.

# 나의 소중한 주말을 앗아간 나혜림. 안녕. <안녕, 미스터 타이거>
  나혜림이라는 작가를 <안녕, 미스터 타이거>를 통해 처음 만나게 되었습니다. 책과 함께 전달된 편지에서 저와 같은 교사라는 것도 처음 알았습니다. 낯선 사람의 낯선 지명과 필체의 글. 1부 ‘쇼와 10년, 1935’라는 제목부터 익숙치 않고 11쪽에 걸친 첫 이야기 ‘그물을 말리는 곳(하얼빈의 유래)’도 이 이야기의 시작은 의미를 알 수 없게 시작합니다. 아니 주인공이 중국인인지, 미국인인지, 러시아인인지, 조선인인지도 애매모호하게. 역사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라면 그 말들의 의미를 파악하는 것조차 낯설어서 쉬이 빠져들기 어려울 것 같은 이질감도 느껴집니다. 과연 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을까… 하는 11쪽이 지나고 52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2부 ‘계미, 1883’의 첫 마디는 ”계손향“입니다. 아… 이 사람이 1부의 그 레이디 S일까. 봄이면 꽃을 팔고 겨울이면 신문을 판다던 말의 의미를 단박에 알게 됩니다. 필시 주인공이거나 주인공의 가까운 이겠구나 하는 느낌이 옵니다. 그는 어쩌다가 꽃을 팔던 봄의 기생에서 신문을 파는 겨울의 기자가 되었을까… 그의 곡진한 인생여정이 참 궁금해집니다. 조선인으로서는 낯선 ‘소냐’라는 이름은 무얼까.

명부정즉언불순
(名不正 則言不順)
이름이 바르지 못하면 말 또한 순통치 못하니
- 논어 자로편

  1부 소냐의 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안녕, 미스터 타이거>는 이렇게 의미심장해 보이는 구절이 숨쉬듯이 흘러넘칩니다. 도파민 자극하는 강한 어휘, 또렷하고 폭력적인 사건이 없음에도 쉬이 넘겨지지 않는 이유가 그 의미심장함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어떤 이는 어릴 때 버려진 기생 계손향의 시선을 따라 멈추지 못하고 글의 끝자락에 도달할 수도, 어떤 이는 의미를 짚어보고 상상하면서 이야기 속 이야기와 옛 언어를 들춰보며 추억과 역사에 잠겨 곡진하게 헤메일 수도 있는 글이더군요. 안타깝게도(?) 저는 후자였습니다. 할 일이 넘쳐나서 빠르게 읽고 가볍게 리뷰를 남겨보려고 했지만 그러지 못하고 주말 이틀을 통으로 이 글에 기꺼이 양보했습니다.
  <안녕, 미스터 타이거> - <하얼빈> - <대온실 수리보고서> - <리스본행 야간열차> - <한국사상선 나혜석>을 포함해 많은 작품과 시대를 넘나들게 하는 여정이었어서 그리 아까울 것 없는, 아니 넘치도록 짧고 알찬 주말이었습니다. 왠지 어딘가의 교육 현장에서 꼭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작품이었습니다. 만약 만나게 된다면, “안녕, 미스 나혜석(앗차. 왜 자꾸;;;), 아니 미스 나혜림-” 하며 인사해보고 싶다는 충동이 밀려오는 친숙함을 느꼈습니다. 한마디로… 나혜림이라는 작가와 글에 반했다는 거지요. +.+
  (제가 서평단으로 꽤 많은 책을 만나왔는데 성격이 모나서 감흥없는 글에 이런 말을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강도높은 비판을… 흠흠…;;)
  표지도 의미심장하네요. 노월이 머물던 영빈관, 밀랍과 비단으로 만들어 지지 않는 꽃 ‘채화 붓꽃’을 들고 시작한 마지막 만남, 애교의 문으로 둔갑해버린 두터운 의의 문(돈의문)과 끝내 그 원래 뜻을 말해줄 수 없었던 그곳에서의 시간, 각자 달리 걸었던 인생 역로. 다 읽고 나니 표지 한 장에 그들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있는 듯 절묘하게 다가오네요.

  아무런 힘이 없던 7살 어린 계집아이에서 세계를 누비는 사진반원이 된 란과 손계향, 그리고 소냐의 이야기. 그리고 그 소리없는 우아함을 시작한 노월의 이야기.

   (이런 저도 모르게  나혜림이라는 모든 부분에서 나혜석이라고 오타를 내버렸군요. 아. 말미에 이름으로나마 나혜석님이 등장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공교롭게도 이번 창비에서 기획한 한국사상선에서도 작업한 사상가 중에 <나혜석>이 있는데, 집어들다가 잠시 구입을 미룬 책이기도 했구요. 게다가… 따끈하게 어제 받은 클럽창비 3기 문고판 도서로‘한국사상선 나혜석’(문고판)을 받기도 해서 더 그런듯하네요.)

#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아무리 보아도 널과 내로다……

‘보아 봤자 너랑 나다. 다를 것일랑 없는 우리다. 그 말입지비.’

‘나는 그대와 같은 세상을 보고 있어요.’
- (p250)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는 하지만… 사실 이 이야기는 단순히 개화기 계손향이라는 열아홉 기생과 푸른 눈의 미려견(미국)인의 로망스(추파)를 다룬 소설이 아닙니다. 여성이라는 존재가 그간 살아왔던 삶의 한과 고단함, 그리고 조용하면서도 강인한 힘을 풀어내는 것이 핵심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남과 여, 권력과 일개 백성이 구분되어있던 시대, 그렇지만 그 구분을 넘어서는 그들의 삶이 있었던 이야기. 계손향은 사실 백성 중에서도 외면받는 기생이어서 더 삶을 둘러싼 벽에 갇혀지내는 사람입니다. 계손향의 긴 인생에서 미스터 타이거, 노월과 보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제목이 <안녕, 미스터 타이거>일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조금 뜬금없지만 계손향의 이야기를 보고 있다보니 제가 좋아하는 작품 <리스본행 야간열차>가 떠올랐습니다. 주인공 그레고리우스는 평생 죽은 언어를 가르치는 고전어 교사입니다. 어느 비오는 날의 출근길까지 그는 항상 마치 죽은 것처럼 정해진대로 변화없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다리 위에서 뛰어내리(려고 짐작한)는 어떤 여인을 만나고 홀린 듯 그를 학교로 데려오고 어느 순간 사라진 그에 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녀의 모국어가 “포르투게스”라는 것 뿐. 그가 사라진 후 그는 갑자기 교실을 떠나 돌아가지 않고 우연히 얻은 포르투갈어책 <언어의 연금술사>를 들고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오릅니다. 그의 별명인 ‘문두스(세계, 우주, 하늘 등을 뜻하는 라틴어)’가 통째로 흔들리는 일이었습니다. 바그다드와 이스탄불에 빠져 페르시아어 공부를 시작한 그로고리우스가 뜬금없이 동양의 뜨거운 사막의 꿈 때문에 아무 근거도 없는 공포에 눌려 죽은 언어인 고전어와 함께 멈춰버렸습니다. 교실을 떠날 때까지 그의 삶은 어땠을까요… 푸른 눈의 호랑이인 미스터 타이거를 만나기 전까지 계손향의 우주는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미스터 타이거를 만나 얻게 된 새로운 언어, 새로운 이름… 미리견의 언어와 소냐는 마치 그로고리우스의 ‘포르투게스’와 같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계손향은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사진을 배우고 결국 길고 긴 여정의 기차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그 날 계손향이 보빙사를 대접하는 연회에 나가 노월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일까요 필연일까요. 그 만남이 아니었다면 계손향의 인생의 철로는 많이 달라졌을까요. 모를 일이지만 계손향이 노월을 만났다는 것이 왜인지 위로가 되고 안심이 됩니다. 설레고 두려운 그들의 짧고 잔잔하지만 ‘소리없이 우아한 결정적 만남’이 궁금하시다면 <안녕, 미스터 타이거>를 펼쳐보시죠. ^^
계손향과 노월의 만남에 어울리는 표현이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있어서 조금 옮겨봅니다.

소리 없는 우아함. 익숙한 방향을 완전히 바꾸는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이 격렬한 내적 동요를 동반하는 요란하고 시끄러운 드라마일 것이라는 생각은 오류다. ……(중략)……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인생에 완전히 새로운 빛과 멜로디를 부여하는 경험은 소리 없이 이루어진다. 이 아름다운 무음에 특별한 우아함이 있다. -<리스본행 야간열차> 속 <언어의 연금술사> 중


# 우리네 과거 삶의 향기가 묻어나는 우아한 글
  하늘의 해와 달이 된 오누이의 이야기 일월설화와 산성을 지었던 보련과 장미설화, 방상씨, 호랑이도 이기는 곶감, 창귀의 호랑이, 인의를 아는 호랑이 아우, 해는 뜨거워 뱉고 달은 차가워 뱉은 불개, 아비에게 버려졌다가 아비를 구한 바리데기, 도끼자루 썪힌 나뭇꾼 이야기와 그와 짝이 맞는 미국의 립 밴 윙클 이야기 등 많은 이야기가 오갑니다. 우리도 잘 모르는 옛 우리 문화와 언어의 향기에 취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참… 우아해요.

그 소리에 노월이 달게 웃었다. 웃음을 숨기는 조선의 사내들과 달리 노월은 아이처럼 숨김없이 웃는다. 웃는 노월의 뒤로 하늘이 흠뻑 붉다. 그 붉음에 그대로 뛰어들 수 있을 것만 같다.

순라꾼도 자비를 베푸는 섣달그믐이니까요. 그러니까 조금, 천천히……

떠날 때를 알고 떠나는 게 미덕인 줄 알면서도, 그사이 정이 들어, 정이 깊어, 향수와 다정 사이 다리가 묶인 채 길을 잃어……

두 사람의 머리 위로 설탕 같은 눈이 부스러졌다. 곶감처럼 다디단 조선의 겨울. 계미년 마지막 날이었다.


  맛있는 데 죽는다는 표현을 쓰는 유일한 나라가 우리나라라지요. 웃음도 달고, 눈도 설탕같은 우리네 정서, 정과 한, 외국의 말을 우리말로 모두 옮길 수 없듯이 외국말로는 다 옮길 수 없는 우리네 말이 우아하게 담긴 글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어요. ^^ 그리고 별 거 아니지만 ”배울 학 을러언.“ 같은 부분도 좋았어요. 아, 국어 선생님이나 영어 선생님이신가. 보통 러언- 이라고 할법한(우리 세대라면 더더욱;;) 발음을, 소리가 시작되는 정확한 소리로 표현하는 부분. 언어를 세심하게 다룬다는 느낌이 글 전체에 넘쳐납니다. ^^ 나혜림 선생님 덕분에 우아한 주말이었네요. 감사합니다~ ^^

다만 아쉬운 점은… 팩션인만큼 사실 고증에 관한 부분의 각색은 언급해주시면 좋았겠다… 싶고, 디테일한 설정들을 조금만 더 신경써주셨었다면 좋았겠다 싶네요. 더 정확한 사료를 조사하셔서 온라인 상 정보가 틀린 것일수도 있겠지만… 홍영식의 관직이라든가 노월의 화성에 관한 연구 등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서 어쩔 수 없더라도 언급은 해주면 좋지 않을까요. 특히 청소년들이 주 독자층인만큼 역사를 왜곡해서 받아들일 수 있기도 하고 전개상 억지스럽게 끼워맞추기 위한 설정으로 이어지기도 해서 옥의 티로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역사적 사실들에서 착안해 소설의 흐름을 맞춰보려는 시도는 좋은데 딱 떨어지는 언어유희는 아쉬울 수 있겠지만 세련되게 풀어낸다면 오히려 생동감을 더할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아니면 차라리 아예 새로운 세계관으로 씌어졌다면 좋았겠다 싶은 지점이에요. ㅜ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