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출판사의 계간지 『womankind(KOREA)』 VOL.13. p.14-15에 실린 글에 언급된 연구와 맥락을 토대로 했습니다.
필자는 플로리다 트레버 포크(Trevor Foulk) 박사의 연구들을 언급합니다. 그의 연구들 중 하나는 '무례함을 보는 것이 우리의 해석과 대응에 주는 효과'에 대한 연구(관련 내용 포함 기사 링크)입니다. '무례한 상호작용을 하는 영상'을 시청한 사람과 '예의바른 상호작용을 하는 영상'을 각각 목격한 직원들이 '중립적/적당히 무례한/강하게 무례한 이메일'에 어떻게 반응하는가였습니다. 어떤 영상을 시청하든 무례한 이메일에 대한 반응은 무례한 영상에 대해 공격적인 대응을 할 가능성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받는대로 주는 거니까요. 문제는 자극의 정도와 반응의 정도입니다. '무례한 상호작용 영상'을 시청한 사람들은 '적당히 무례한 이메일'에 '악의적으로 해석'하고 '적대적인 대응'을 했습니다. 예의바른 상호작용 영상'을 시청한 사람들은 '적당히 무례한 이메일'에 '온화하게 해석'하고 '중립적인 대응'을 했습니다. 이 결과는 무례함을 목격한 것만으로도 상대방의 행동에 대해 무례하게 해석하고 대응하는 민감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그것도 '무의식적'으로 말이죠! 이것은 우리가 무례함에 노출되었을 때 자연스러운 반응이고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보면 공격성이 높아지는 것보다 이 점이 무섭기도 합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또 다른 연구인 '의료 현장에서 무례함이 수행능력에 미치는 효과'에 대한 연구(관련 내용 포함 기사. 시뮬레이션 실험.)는 더 심각합니다. 환자의 엄마 역할 배우가 의료진에게 무례한 언행을 했을 때 의료진의 진단 정확도/정보 공유 등을 포함한 11개 측정 결과에서 모두 수행능력에 문제가 나타났습니다. 해당 연구의 대상 환자는 신생아였습니다. 어떻습니까? 무례함이 주는 효과와 결과가 매우 무섭다고 느껴지시지요? 의료 현장에서 무례함에 의한 수행능력 차이(40% 이상)가 만성적인 수면 부족에 의한 수행능력 차이(10-20%)보다 크다는 것을 고려하면 이 효과는 매우 심각합니다. 이 정도면 2020년을 뒤흔들고 2021년의 시작도 여전히 흔들고 있는 'COVID-19'의 전염성에 필적할만하다 하겠습니다.
다행히도 해당 기사에는 무례함에 대응하기 위한 '개입'과 그 결과까지 나타납니다. 이 '개입'은 무례함을 겪기 전과 후로 나누어 사전 개입과 사후 개입을 합니다. 무례함에 대한 민감도를 높이기 위한 처치를 먼저 받은 '사전 개입 집단'과 사후 환자 엄마 입장에서 글을 써 보는 '사후 개입 집단'의 결과가 사뭇 다릅니다. '사전 개입 집단'은 중간에 엄마의 무례함을 인지했고 무례함을 겪지 않은 집단과 비교해서 수행능력에 영향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사후 개입 집단'은 시뮬레이션 중간에 무례함을 인지했지만 개입의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고 나중에는 무례함을 인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 연구 결과는 다행이기는 하지만 결국 당하는 사람이 민감도를 높여 상대방의 무례함을 '인지'해서 객관화하는 노력을 해야한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결국 처음부터 서로 예의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고 혹시라도 무례함을 겪더라도 인지한 누군가가 먼저 그 무례함을 해소해야 할 것입니다.
필자는 이 두 개의 연구 결과를 간단히 언급하면서 온라인 상에서 우리가 주고받는 상호작용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권유합니다. 무례함이 주는 효과는 '지속성', '전염성'과 '무의식'적 측면에서 매우 어렵고 심각한 문제입니다.
마주치기만 해도 전염되는 무례함의 위력에 몸서리만 치거나 민감도를 높이는 방법은 중요하고 효과적입니다. 'COVID-19'와 같은 바이러스에 대한 우리의 대안에서 가장 좋은 건 '예방'이겠지요. 민감도를 높여 해소하는 방법이 자체적으로 '면역력'을 높여 '예방'하는 것이라면 '마스크'나 '집콕' 혹은 '백신'처럼 외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면역 체계를 형성하거나 노출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방법이 있겠습니다. 이 무례함은 보는 것만으로도 감염되는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요? ''만나지 않는 것'이나 '백신'과 같은 '예방'은 결국 누구나 짐작하듯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감사함의 표현과 의료진의 수행능력'에 대한 연구에서 언급하듯이 부정적인 에너지를 피하거나 해소하는 것은 소극적이거나 사후 처방일 뿐입니다. 내부의 적이 더 무서운 것처럼 인지하기 어렵다는 것은 그만큼 어렵습니다. 긍정적인 에너지를 전파하는 것이 결국은 근본적이고 적극적인 대안이 아닐까요? '치료'는 어렵습니다. 사후 조치인 '치료'보다는 '예방'하는 것이 역시 인간다운 방법인 것 같습니다. 되도록 많은 사람이 '인간답게' 살면 좋겠습니다. ^^
- 트레버 포크 박사의 연구 내용은 글과 다소 상이하며 기사와 논문을 토대로 조금 더 구체적 혹은 추가적인 연구를 언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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