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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창비/2023 창작과 비평

[201호 가을][책머리에] 청렴한 당신의 밥그릇

  “청렴한 당신이 있어서-”
  몇년전부터인가 교육청에 문의차 전화를 했는데 신호 대신 이런 가사로 시작하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뭔가… 기분이 좋지 않다. 이런 노래를 왜 교사가 교육청에 전화하면서 들어야 한단 말인가. 물론 교사가 세상 청렴한 건 아니지만 마치 세상이 행복하고 정의롭지 못한 이유가 교사에게 있다는 듯 아무렇지 않게 청렴함을 요구하는 듯 해서였다. 교사가. 비리를 저질러봐야 얼마나 저지르겠나. 저질러봐야… 비품으로 사놓은 건전지 몇 개 집에 가져가는 정도일까.

진짜 카르텔은 어디에 있는가


  초임 학교의 청렴 연수인가에서였다. 아이들 추울 때 더울 때 사용하라고 교실에 가져다놓은 포트인가 냉장고인가를 사비로 사다놓은 선생님에게, “이거 전기세 내고 있냐”며 치우게 했다는 무용담을 자랑스레 늘어놓는 감사팀인가 하는 사람을 본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다. 진짜 큰 비리는, 사회를 좀먹고 있는 비리는 어디에 있나. 교사에게? 국민에게? 교통위반자에게?
사회의 불합리한 점, 놓치고 있는 점들이 어느 한 집단에게서만 기인할리는 만무하다. 태어나서 겪는 경험들, 그 각자가 모여 이루고 있는 사회, 각자의 소신이나 즉흥에 의해 치러지는 투표, 그로 인해 나타나는 변화가 불러오는 변화 등 온갖 것들이 서로 돌고 돌며 사실 내가 누구고 누가 나인지 모를 지경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것이 우리 사회 아닌가. 그렇지만… 최근 있었던 사교육 카르텔은 저 청렴송이나 초임 학교에서의 무용담 등에 대한 데자뷰처럼 느껴진다.
  이 시대가 교육에게 바라는 건 무엇일까. 교육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교사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어떤 존재이길 바라는가.


  잠시잠깐 몇해전 스승의 날에 임박해서 어느 교육청의 nice 대국민서비스 접속 첫화면에 스승의 날 기념 교사의 ’밥그릇‘ 운운했다가 금세 내렸던 기억이 스친다. <창작과 비평> 201호 가을의 책머리에 ’진짜 카르텔은 어디에 있는가‘를 보니 왠지 이런 기억들이 밀려왔다 밀려간다.

진짜 교육 문제는 어디에 있는가

청렴한 당신의 밥그릇에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