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으며 좋은 생각과 표현을 만날 때 늘 그런 글을 '창작'하고 있는 내 공상 속 어딘가 내가 있다.
하지만 실제는 창작은 커녕 읽은 글에 대한 '단상'을 달기에도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여러 날이 지나고 심호흡을 한참 한 뒤에야 이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그러니 이 책을 쓴 시간들을 가늠한다는 것은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 창작에 비평을 하는 일은 부족한 나의 시간과 애정으로는 불가하고. 역시 짧은 느낌들을 적는 것이 최선이겠다.
그렇게 책머리를 시작한 황정아님의 글에 공감하고, 백낙청 교수의 글을 읽었다. 이 정권이 시작한 후로 늘 눈을 감고 싶고 외면하고 싶은 사회의 모습을 정계, 언론, 사회, 지구와 여성, 남북 관계까지 다루어 잠시 눈을 뜨고 보았다. 정치는 '옳고 그름'의 주장이 아니라 나의 '옳음'에 대한 주장이고, 서로의 '옳음'은 결국 합리적인 설득에 다다르지 못한다. 힘이 센, 이긴 것이 옳은 것이 되어버린 오늘의 상황은 갑갑하고, 사실 이런 막막함은 처음인 것도 아니다.
세상을 근본부터 바꾸고자 하는 '개벽'(p.29)이 절실함은 현실에 대한 막막함으로 매우 공감했다. 그래서 김용옥 교수의 '동학 경전의 탄생'(p.250)을 흥미롭게 읽었다. 함께 노자를 공부하는 모임이 있는데, 얼마 공부하지 못했지만 서양의 종교와 철학은 대체로 '초월적 절대자'만이 존재하는 것이고, 사유가 존재이다. 자연이나 인간은 가짜이거나 수동적이거나 객체이거나 통제가 되어야 할 대상이었는데, 지금 우리가 마주대하는 현실의 핵심적 구조가 그것일 수 있다고 했다.
동학은 '무위이화'라고 했다. 생성이라고 했다.
무위자연(無爲自然)을 주장한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무위이화의 출전이 되는 “무위이민자화(無爲而民自化)”라는 말을 하였다. 『도덕경』 57장에는 “성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무위(無爲)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감화되고(無爲而民自化), 내가 고요함을 좋아하면 백성들은 저절로 올바르게 되며, 내가 일거리를 만들지 않으면 백성들은 저절로 부유해지고, 내가 무욕하면 저절로 질박해진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노자가 말한 ‘무위’란 아무런 행위가 없다는 의미가 아니라 인위가 없음(無人爲)을 뜻한다. 인위는 본래의 모습을 해치는 인위적인 조작을 말한다. 이렇게 보면 무위의 위(爲)는 인간 행위 전반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본래 모습을 해치는 행위라고 해석할 수 있다. 노자는 “무위의 방식을 행하며, 일거리를 없애는 태도로 일한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그의 뜻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다거나 모든 구속을 거부하며 자기 의지대로 하자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하되 인위나 유위적 방식이 아닌 무위의 방식으로 하자는 것이다.
어렵지만, 자연을, 인간을, 시민을, 서로 다른 성을 볼 때의 모습들이 그러했으면 좋겠다. 인간의 본래 모습을 해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을 중심에 둔다면 지금이 어떤 모습일 것인가.
'수운 최제우는 외세의 위협으로부터 극복하는 길은 물리적인 대응이 아니라
우리에게 위협을 가하는 힘을 생성하고 있는 그 핵심적구조의
허점을 파악하고 그 죄악을 개벽함으로써
우리 문명의 건강성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p.253)
며칠 전 누군가 일본 여행이야기가 주제로 나왔다가 홋카이도의 아이누족이나 오키나와의 류규 왕국과 한국이 달랐던 이유로 '한글'이라는 독립된 언어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영상을 봤다면서 잡담을 나눴었는데, 문득 동학에 대한 생각이 났다. 서양 체계가 아닌 동양, 또는 우리만의 철학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우리 문명을 건강하게 할 것인가.
앞으로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읽으며 내가 얻고 싶은 답이다.
이 위협으로부터의 극복.을 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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