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호 특집을 앞둔 <창작과 비평> 199호. 그 임박한 경계선 직전에서 2023년 ‘선생님을 위한 클럽 창작과 비평 2장’이 시작되었다. 몇년인가 구독하다가 어려운 글은 어려워서, 편협한 글은 편협해서 제대로 소화해내지 못하고, 이런저런 게으름과 바쁘다는 핑계 등으로 구독을 멈췄었다. 내게는 교육이라는 분야에서 나름대로 사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한다는 그럴듯한 핑계를 얹어서. 선생님을 위한 클럽 창작과 비평 메시지를 받았을 때, 몇 번인가 완수해내지 못한 미션 때문에 생긴 마음의 짐에도 불구하고 다시금 용기를 냈다. ‘과학 시간에 민주주의 교육하기’ 학교간 교사학습공동체 선생님 두 분 덕분에 더 용기를 낼 수 있었다. 야심차게 시작한 클럽 2장이 바쁜 일상에 밀려나면서 마음의 빚은 오히려 더 커질 위기에 처해 있지만 그래도 이어가야지!! 선생님을 위한 클럽 창작과 비평을 보면서 선생님들이 함께 ’청소년을 위한 클럽 창작과 비평‘을 운영하거나 ’청소년을 위한 창작과 비평‘이 생기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꾸역꾸역 이어가는 미션 교사가 한 명이라도 더 있어야 가능해지지 않을까. 내가 이룰 능력은 없지만 이렇게라도 힘을 실을 수 있지 않겠나!!
이미 배송된 200호를 위해서라도 어서 한 걸음 내딛자. ‘살던 대로 살지 않기 위해’
모든 글은 아니더라도 이미 읽은 몇 개의 글을 뒤로하고 책을 넘기다가 마주하기 두려운, 나희덕의 <샌드위치>가 손길을 덥석 잡는다. 원효대사 해골물은 우리 일상 모든 곳에 스며들어있다. 내가 눈을 떠서 바라보는 그 무엇에 사상자가 없는 대상이 있으랴. 하다못해 하늘에서 내린 우박에 맞은 사상자도 있을텐데. 아니 햇빛 쬐다 죽은 사람도 꽤나 많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살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햇빛이 필요하고 그로 인한 환경을 누리고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 그러나 감수할 수 밖에 없는 위험을 감수하는 것이 합리적이듯, 감수하지 않아도 될 위험을 감수하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합리적이며 감당하지 않아도 될 감정을 감당하지 않도록 하는 것 또한 합리적이다. 안전장치가 없는 현장, 사고 현장 사고 당일 저녁부터 작업이 이어지고 유족에게 빵을 두고 간 사측의 행위는 분명 비합리적이다.
이 샌드위치를 먹지 말자는 것은 비합리적인가. 가맹점주들의 생존을 위해 불매를 탓하는 것은 비합리적인가. 구조적 문제를 짚고 개선해야지 감성팔이를 하는 것은 비합리적인가.
3월 눈 앞에서 보는 선배를 데리고 길거리에 나섰던 그 선배의 선배 소식, 4월 죄없이 죽은 어느 학생의 소식, 5월 잔인했던 그 도시의 소식… 그리고 벌써 9년이 지난 충격적인 침몰 소식. 3주기에 말없이 리본을 만들면서 본 어느 20대 남녀의 오열. 오열이 지난 후 알고보니 배에 함께 타고 있던 친구들이라는 천막 사람들의 말소리. 그리고 어느새 무뎌진 내 기억과 아픔. 때때로 느껴지는 죄책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삼킨 교반기 속의 어둠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의 소스가 되어버린 노동자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견디기 어려워 묻어두고도 싶은 두려운 소식들에도 불구하고 샌드위치를 마주할 용기라도. 언젠가 잊을지언정 마주할 용기라도, 의지라도 놓지 않기 위해. <창작과 비평>을 ‘또’ 집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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