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끝났다. 내가 진정한 작가라면 전쟁을 막을 수 있었을텐데......'
......
"무슨 뜻이지?"
"나도 잘 모르겠어."
"그런데 왜 밑줄을 그어놨어?"
"이상한 말이니까. 절실한 말 같기도 하고......"
"작가가 누군데?"
"무명작가야."
"무명작가?"
"......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직전이지. 이 작가는 어쩌면 전쟁중에 죽었는지도 몰라."
- <골짜기에 잠든 자>(정찬, 문학동네, 2019) 중에서
진정한 언어의 힘을 믿었던 무명 작가의 글로 시작하는 이 글은 랭보를 매개로 따뜻한 인류애를 노래하고 살아냈던 세 사람의 이야기이다. 이야기는 그리 편안하지도 따뜻하지도 않다. 세상에 드러나 지배하고 있는 모습이란 편안함이나 따뜻함과는 거리가 머니까. 변하지 않을 세상에서 변화한 세상을 보는 것이 고통과 절망이 더 익숙한 일일테니까. 그럼에도 따뜻한 인간성을 유지하고자 했던 이들의 이면을 좇는 이 상상의 이야기는 희망적이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도구가 언어라면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기나긴 배움의 시간이리라.
복직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이다. 아이를 키운다는 명목으로 휴직하고 이도저도 아닌 시간을 보낼수록 참 어려운 것이 배움이라는 것을 느낀다. 희망을 위해 휴직했던 시간의 끝자락이 다가올수록 진정한 교사가 아닌 단순한 무명교사인 내가 절실하게 다가온다. 아니 진정한 교사가 아니라서 무명인가.
교사로서 가장 두려운 일이란 나를 통해 아무것도 배우지 않는 것이다.
내가 교사로 적절한 사람인가
나는 아이와 부모에게 유익한 사람인가
나는 아이와 부모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인가
나는 사회의 따뜻함에 도움이 되는 사람인가
나는 사회의 배움에 이바지하는 사람인가
그 배움을 돕는 것이 직업이랍시고 가진 '샘 ㅅㅌ'는 그렇게 자처할만한 자격이 있는가. 무슨무슨 자격이라는 게 허망한 말이라는 걸 알면서도 집착하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내가 진정한 교사가 아니기 때문일지도 모르지. 사람 때문에 들어선 길인데 사람을 힘들게만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언제나 조심스럽고 괴롭다. 그것 참... 쓸쓸하고 공허하네.
좋다. 진정한 교사씩이나 바라지는 않겠다. 나는 소박하게 '직업 교사'가 아니기를 바란다. 소위 말하는 '유명 교사'들을 보면볼수록 '배움'에 대한 희망이 덧없다는 걸 느끼지만 그들에게도 바라는 건 같다. 그리고... 교사는 혼자여서는 안된다. 혼자서 진정한 교사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그건 교사가 아닐거야.
우리가 진정한 교사라면 '우리'는 조금 더 행복하게 나아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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