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클럽창비 2기 <셀렉션 2호> 두번째 글(<창작과 비평 207호> 2025년 봄호 ‘연대로 확장된 광장과 민주주의’)
젠더연구자 김소라는 이 글(<창작과 비평> 2025년 봄호 ‘연대로 확장된 광장과 민주주의’)을 통해 2024년 말과 2025년 시작의 혼란과 환희를 달궈냈던 탄핵 정국의 연대의 힘이 광장을 확장하고 민주주의의 새로운 국면을 끌어냈다고 평한다. 특히 민중가요와 유행가, 다양한 응원봉과 진지한 정치적 목소리,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공존을 통해 일상과 정치의 결합이 존재했던 탄핵정국이 희망과 다른 미래를 점친다. 개인적으로 탄핵선고에서도 언급했던 시민들의 즉각적이고 용기있는 대응이 이번 탄핵정국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길고 긴 탄핵정국이었지만 의미있고 희망 넘치는 시간으로 느껴지기도 했던 것은 추위와 시간에 아랑곳하지 않고 누구보다 빠르게 모여 군대를 몸으로 막아서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비롯된 동력이 아니었을까.
남태령에서 시작된 연대의 성공을 통해 각자 다른 사회에 대한 염려와 결집된 힘을 체감하고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 탄핵의 경험은 글의 제목대로 희망을 선언할만하다. 그 힘으로 이어질 앞으로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그려낼 일이 우리에게 과제로 남아있다는 인식에도 크게 공감한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서로를 염려하고 이해하고 이야기 나눌 광장으로 나아가야 할 때다. 다름을 묵인하거나 혐오하기 위함이 아니라 부딪히고 그를 통해 다름을 넘어서기 위한 광장으로. 다만 아쉬운 점은 필자가 이야기하는 광장의 성격에 드는 의문이다. 남태령 경험과 같이 일부 구체적인 사례를 제외하고 대체로 희망에 찬 선언적 내용이 많은 점은 당위를 제시한다는 면에서라도 중요하기에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글의 논리와 흐름에 비해 다소 동떨어진 2030 여성의 역할이나 남성의 폭력성에 대한 부각은 제목과는 달리 ‘2030 여성이 연대해 줘서 확장된 2030 여성의 광장과 권력’이 글의 제목이 아닌가 고민해보게 한다. 구체적이고 긍정적인 탄핵정국의 모습을 기술하기 직전 갑작스레 2030 여성에 대한 칭찬은 마치 2030 여성이 그 모든 것을 해냈다는 의미로 읽힌다. 광장에서 2030 여성들이 다양한 사람과 만났고40~50대 참가자들과도 만났다든가 남태령에서의 여성 커뮤니티의 소개나 ‘농가의 딸’ 발언에 이은 연대와 같은 이야기들은 필자의 표현대로 ’2030 여성이 주축이 된‘(22쪽) 탄핵정국의 대부분 공이 2030 여성에게 있다는 맥락으로 이끈다. 이 교묘한 끼워넣기와 배치를 통해 시도하고 있는 것처럼 오해하게 만든다. 특히 확장된 광장과 연대를 이야기하는 와중에 여성과 관련된 그간의 범죄들, 탄핵정국에서 언급됐던 여혐 사례들, 서부지법 습격의 다수가 남성이었음을 강조하며 확장된 활력이 유지되기 위한 방법으로 광장에서 2030 여성의 기여를 인정받고 정치에서 몫이 이루어져 여성들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2030 여성에게 주목하라는 해법은 과연 이 글이 무엇을 위한 글인가 계속된 오해를 불러온다.
필자의 말처럼 여성의 목소리와 몫이 보장받는 사회의 중요성에 대해 매우 공감한다. 그리고 광장이 확장되고 민주주의가 힘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에 적극 공감한다. 필자의 말처럼 서로의 구체적 삶에 대한 관심 속에서 타인과 공동체에 대한 염려가 만들어지고 이 염려가 시민 사이에 폭넓은 연대의식이 작동할 수 있기를 바란다.
필자가 말하고자 했던 바가 다음과 같다고 믿는다.
우리는 위태로운 탄핵정국을 강인하고 슬기롭게 극복한 ‘국가’의 국민이자 함께 견디고, 배려와 해학으로 이겨낸 ‘나라’의 구성원이다.
부디 나의 편협한 관점이 필자의 글을 폴리 머레이와 같은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When my brothers try to draw a circle to exclude me, I shall draw a larger circle to include them. Where they speak out for the privileges of a puny group, I shall shout for the rights of all mankind.
- <AN AMERICAN CREDO>(1945), PAULI MURRAY
흑인 인권운동가이자 동성애자의 통 큰 에세이에서 크게 배우며, 우리를 포함할 더 큰 원을 고민하고, 어떤 소리를 크게 외칠지 고민할 과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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