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망
(조국과 청춘 3집)
차비 걱정에 끼니 거른 날 몇날인지 몰라도
빈속찌르는 아픔 그것을 세상의 고통이라 여기고
백화점 옷이 이제 더이상 나의 것이 아닐때
스물넷 꿈많은 나의 인생이 허무하다 생각 말았으면
내 애인의 생일에 작은 선물 하나 못하는
안타까움 그것을 사랑이라 부를 수 있다면
혁명의 길에 6년째 지쳐 도망치고 싶을 때
이까짓 6년은 너무 짧다고 허나 우린 이만큼 왔다고
노래하며 살았으면
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건 봄이 오는 걸 아는 꽃이라
이야기하며 기꺼이 겨울에 피는 꽃이 되고 싶어라
# 지금이 봄이 아니라 겨울이라는 것이라도 아는 꽃
봄이 오는 걸 아는 꽃이라도 되자. 아니, 누군가의 봄이 나의 봄이라는 걸 아는 꽃이라도. 관심도 없고 이 순간 이후로 여전히 관심없을 종목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것이 우리나라 국민이라 자랑스러울 수 있다면 우리 사회의 약자의 ‘평범’이 가능할 수 있음에 자부심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물리는 쉽지 않아.
상식적이기는 하지만.
물리가 쉽다는 강사들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물리가 쉽지 않음을 강조할 때 덧붙이는 말이 있다. 물리는 상식적이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상식으로 만들어 준 것이지만 그 체계 안에서 물리학이란 상식적인 흐름을 따라간다면 꽤나 그럴듯한 결론에 도달하는 그런 학문이다. 쉽지 않다는 말에 끄덕이던 아이들도 상식적이라는 말에는 ‘뭔 말도 안되는 소리’인가 하는 표정이 된다. 그러면 이런 말을 덧붙인다. 상식적이라는게 얼마나 어려운건지 지금 우리 사회를 보면 알 수 있지 않느냐고. 그렇다. 상식이 상식이 되는 과정은 어려운 일이다. 그 과정에는 그것을 상식으로 만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들이 녹아있다. 상식이 된 것을 나 스스로 생각하거나 구현하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이다. 많은 이들이 상식은 쉬운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것을 ‘암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 녹아있는 엄청난 ‘의미’를 스스로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우 다양한 관계와 계층에 속해 이 사회를 살아간다. 혈연적으로는 자식, 조카, 부모 등으로. 경제적으로는 중상류층, 중산층 등으로. 또 막 입사한 직장에서는, 학교에서는 등등등. 그 중에 나와 그리 멀지 않은 누군가는, 혹은 나 자신이 언제든 약자가 될 수 있는 위기를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다. 작은 확률의 위험이 쌓이면 그게 일어날 확률이 높다고 한다. 확률이 낮아 괜찮다고 저지르는 많은 일들이 쌓이다보면 누군가는, 혹은 나 자신이 그 위험의 낮은 확률에 걸려들 수 있는 것이다. 태생적이든 후천적이든 그럴 수 있는 일은 다반사다. 내가 오늘 탄 버스가 전복될 확률, 내가 지나가는 건물 위에서 무언가가 머리위로 떨어질 확률, 내가 걷고 있는 길이 갑자기 꺼질 확률, 주머니에 손을 넣고 걷다가 갑자기 넘어지면서 얼굴을 바닥에 찧어 뇌진탕을 일으킬 확률……
이 어려운 상식과 낮은 확률이 나나 가까운 이에게 동시에 다가오게 되는 순간 우리는 ‘평범’이 평범하지 않음을 알게 된다. 그런 순간을 우리는 꽤 많이, 그리고 자주 지켜봐왔다. 그리고 그것을 문제라고 느끼지 못한 문제들, 문제라고 느끼면서도 지나친 문제들, 직접 달려들어 해결해보려고 하다가 높은 벽을 마주한 문제들, 결국 변화를 느끼지 못해 답답한 문제들이 넘쳐난다. 그래도, 겨울에 피는 꽃까지는 어렵더라도, 봄이 결국은 오게 될 것을 아는 꽃이라도 되고자 나름 노력을 하면서 살고 있다. 그렇지만 나 자신도 겨울에 피는 꽃이면서 봄이 오는 걸 아는 꽃이면서 지금이 봄이 아니라 겨울이라는 걸 모르는 꽃이기도 하다. 내가 ‘인지조차 못하는 평범’의 지점과 누군가의 ‘불가능’의 지점이 겹치는 순간들은 분명히 존재하므로. 내가 모르던 겨울을 나는 얼마나 알아가고 있나 되돌아보게 된다.

# 우리, 사라지지 말자(<창작과 비평> 2023년 봄호 수록. 유해정)
유해정 활동가는 사회적 위기가 도래할 때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는 사람들인 사회적 약자들은 평범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사회적 약자의 삶이 한 사회의 수준이자 실력이며, 인권의 척도인 이유라고도 한다. 이제는 지난 정부가 되버렸지만 한창이었던 2023년 봄. 필자는 그 어려운 ‘평범’을 진짜 불가능으로 만들어가는 과정과 결과를 내놓는다. ‘평범’에 가까워졌던 것들까지도 포함해서. 며칠전 이재명 대통령은 청와대 영빈관에서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과의 간담회에서 정부를 대표해 사죄했다.(2025.7.16. 사회적 참가 유가족과의 대화) 이제는 지겹다거나 학교 물품(마스킹 테이프나 이젤패드 등)으로 추모하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경우를 교육의 현장에서도 접하게 될만큼 시간이 지난 시점에 대통령이 이제야 사죄하며 허리를 숙였다.우리 사회는 조금 더 ‘평범’에 가까워진걸까.
필자는 이 글을 통해 이 사회에서 벌어지는 노동자, 장애인, 참사를 겪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조목조목 풀어낸다. 그리고 그들을 대하는 우리 사회가, 지난 정부가 어떻게 이들을 몰아부쳤는지도. 그 와중에도 거리에 나서고 지는 싸움을 하는 그들에게 ’질지도 모르는 싸움을 왜 하는가‘ 던진 잔인한 질문에 돌아온 답은 그것이 그들의 선택이 아니라 유일한 일이라는 것을 전달한다.
그렇다고 이대로 살 순 없지 않습니까?
강자의 특권을 보장하는 데 치우는 법과 정의는 비판해야 한다는 류은숙 활동가의 발언(노조법 2, 3조 개정 촉구 인권단체 기자회견(2022.12.7))은 권력의 판단을 단지 수용하는 것만이 우리의 역할이 아님을 깨닫게 한다.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가. 권력이 제 기능을 하도록 감시하고 대리하게 하는 것임을 깨닫게 한다. 지금 지더라도 이대로 살 수는 없기 때문에. 누군가가 거리에서, 패배의 현장에서 결국엔 이겨야 할 싸움을 해주고 있는 덕분에 우리가 누리는 평범함에 감사하게 된다. 출근길 지하철을 타서 유인물을 나눠주는 장애인에게, 피해주는 시민은 없다며 시민조차 아니라고 몰아내는 시민, 본인이 장애인에게 위해주는 마음을 먹어줘서 그나마 장애인들이 이렇게나마 살 수 있다는 듯 말하는 시민. 그는 자기 자신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지 않는 순간들을 재벌의 재산에 피해를 줘서 시민도 아닌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그는 자기 자신을 재벌들이 위해주는 덕분에 이나마 살아가고 있는 서민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유튜브: 출근길 장애인 지하철 점거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 모욕적인 반응에도 이 점거를 막는 가장 확실한 방법을 알려주고 영상을 제작한 사람들이 참 대단하다.
그래, 그런 사람들이 있지. 나같은 사람도 있고. 맨 뒤에서라도 서서 따라가면서, 변화를 믿고 그렇게, 우리 사라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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