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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창비/클럽창비 2기(2025.7~)

무심함에 대한 반항의 언어

천의무봉의 웃음

  # 웃음과 울음의 반대말
  행복해서 웃는게 아니라 웃어서 행복한거다. 익숙한 말이다. 실천은 어렵지만. 사람의 행복감은 강도가 아니라 횟수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소확행은 그래서 우리에게 행복감을 가져다주는 좋은 팁이 된다. 그렇다면 울음은? 감동의 눈물이라는 말은 식상하지만 살면서 누구나 겪는 일이다. 사람은 기쁠 때도 슬플 때도 울음이 나온다. 두근두근이 설렘과 긴장을 표현하는 말인 것처럼. 처음 나의 아이를 만났을 때 힘들고 피곤하면서도 행복함과 벅참에 눈물이 아른거렸었다. 그 와중에도 두 눈은 수시로 감겨댔었지만. 아이의 반항에 발끈하면서도 많이 컸다는 대견함도 함께 차오르고, 그런 시간을 거치면서 부모를 배려하고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제시하는 모습에 더 뿌듯함을 느끼는 시간의 연속이다. 어제는 떡볶이, 오늘은 냉우동을 자기가 나서서 하겠다며 점심을 만든 아들에게서 느낀 기쁨은 아빠가 시킨건 하지 않겠다며 버텼던 며칠 전의 반항 덕분에 부자간의 관계가 완성되고 또 다음으로 나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
  2023년말 출판된 <니들의 시간> 출판 기념 ‘작가조명’으로 김해자 시인을 만난 유병록 시인(<창작과 비평> 2024년 봄호 ‘작가조명’)은 여전히 양으로는 적지만 김해자 시인의 시에 웃음이 등장하는 횟수가 늘었음에 주목했다. 그러고보니 평소 잘 웃는다는 김해자 시인의 웃음은 그에게 상당히 의미깊었나보다. 김해자 시인은 1998년 늦깎이로 등단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지만 같은 해에 시와 소설로 등단과 수상을 했다. 고려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노동자들과 일하며 시를 썼다. 등단한 해의 작품들 또한 ‘여자, 강바닥 같은‘, ’최명아‘ 등 이 땅의 아픔을 겪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냈고 그들과 삶을 살아가며 시를 써오고 있다. 그러다보니 김해자 시인이 스스로 말하듯 김해자 시인을 바라보는 시선에 진지함이나 비극적 측면이 강한 것도 이해가 된다. 그를 만난 유병록 시인은 웃음과 울음이 서로의 반대말이 아니라 한다. 웃음과 울음은 나란한 단짝이고, 그들의 반대말은 냉소이거나 무표정일 것이라고. 그에 김해자 시인은 이렇데 답한다.
아픈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균형을 잡으려 하며, 살기 위한 약으로서 웃음을 짓는다고.

아픈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균형을 잡으려고 하는 것 같아요.
심각함, 비참함, 두려움에 먹히지 않으려고요.
그래서 웃나봐요. 생존형 웃음.
살기 위한 약으로서의 웃음


  그는 그런 이들을 많이 만나다보니 전염된 것 같다고. 그래서 ‘한쪽 눈에서 눈물이 나고 한쪽 눈에서는 웃음이 터진다며 아픔과 웃음이 공존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한다’고, 유연하고 작지만 단단하고 깊게 읊조린다. 유병록 시인이 말했듯 그의 시는 깊은 공감과 관심에 기반한 듯하다. 그리고 그는 그런 느낌에 감사를 표한다. 여전히 사람들과 어울려살면서 그들의 삶을 노래하고, 그들의 입말도 담아내며 시를 살아내는 그의 작품에 웃음이 조금씩 더 깃든다는 소식이 왜인지 모르지만 나에게도 감사하다. 수많은 아픔과 고난, 기쁨과 희망들을 엮어 웃음으로 노래하는 것일 그의 작품에 깃든 웃음은 우리 삶에 웃음도 함께 버무려 있다는 위로를 건네는 듯도 하다.
  사람에게 실망하고 사람에게 희망을 품는 것이 또 사람이다.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모든 것이 시로, 소설로, 과학으로, 사회로 담아지는 것이리라. 우리는 개인일 수 없고 하나의 사람으로서만 존재할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하나의 감정으로만 살아갈 수도 없다. 그것들이 모두 얽히고 설킨 것이 사람의 감정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도, 우리의 경험도, 우리의 뇌가 존재하는 방식도 모두 그렇다. 그 중에 굳이 왜 웃음에 주목해야할까. 아픔만 있어서는, 도착지가 아픔이어서는 우리가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의 도착지가 웃음이기 때문에 우리는 아픔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우리는 한을 흥으로 승화시키는 문화를 닦아왔다. 그의 작품도 그 중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그들의 삶과 그들의 웃음에 박수를 보낸다.

  # 공감과 관심의 반대말
김해자 시의 근간이라는 공감과 관심의 반대말은 반대가 아니라 무심함이 아닐까. 꼭 시가 아니더라도 우리를 천의무봉의 웃음으로 완성해주는 출발점은 함께 살아가는 인간이다. 인간은 공감과 관심으로 연결된다. 무심함에 반항하자. 어쩌면 시는 무심함에 대한 반항의 언어일지도 모르겠다.

참고. 창작과 비평, 창비주간논평 맛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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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호의 ‘책머리에’는 볼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글들이 실려있는지 소개하고 있으니 책머리에를 읽고 가입 내지는 구입하는 것도 괜찮은 선택 같습니다. ^^